지나친 욕심은 금물
대학에서의 제 2 외국어 선택
대부분의 일본 대학은 입학과 동시에 제2외국어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2가지 외국어를 필수로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는 유학생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입시를 위해서 일본어와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다른 언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들 것이다.
나의 경우엔, 원래 일본에 오기 전부터 프랑스어를 좋아했고, 일본인이 가르치는 영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문법 설명만하고, 아무래도 그 일본인들의 어색한 영어 발음이 귀에 거슬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영어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일본어와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여기서 선택하는 제2외국어는 필수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단위를 따지 못하면 진급을 하지 못한다. 교수들 중에는 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관계 없이 성적을 주는 사람이 꽤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프랑스어를 선택했는데, 프랑스어의 미묘한 시제 때문에 성적이 좋게 나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프랑스어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경시대회에서 상도 받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 와서 1년간 프랑스어를 ‘읽어본 적’도 없었지만, 대학에서 제 2외국어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당연히’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느라 잊어버린 프랑스어도 다시 되새겨서 실력을 쌓고 싶다는 욕심이 작용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 영어 이외의 제 2외국어는 ‘기초’와, ‘중급’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과감하게도 ‘중급’을 선택하려고 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학교측에서 ‘웬만하면 기초로 시작해라. 중급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보통 귀국자녀(외국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서, 기초반에 들어갔다.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물론 내 머리 속에 프랑스어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조금 공부하면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어(일본어)로 설명하는 외국어(프랑스어)를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칠 때 문법 사항부터 한번 끝낸 다음에 다른 부분(회화, 발음 등)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따라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겨우겨우 1년을 마치고, 2학년 1학기가 되었다.
도쿄대학교 문과3류에서는 4학기(2학년 2학기)까지 제 2외국어를 듣도록 되어 있고, 모든 과목을 패스하지 못하면 3학년에 진학하지 못한다. 패스하기 위해서는, 1학년 평균 학점이 50점 이상, 2학년 평균 학점이 50점 이상이어야 한다. 50점. 사실 반타작만 하면 되는 점수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상황이 다르다. 2학년 1학기 프랑스어를 담당한 교수님은 일본에서 유명한 상도 여러 차례 받아, 팬도 많이 거느리고 있는 프랑스 문학자 겸 작가 겸 문학 평론가인 교수님이었다.
시험 문제는 ‘다음 문단을 예쁜 일본어로 옮기시오’였다.
예쁜!!! 직역을 해도 어려울 판에, 예쁘게 옮기라니! 출석도 거의 다 했고, 발표도 했고, 시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번역을 했으나, 결과는, 21점이었다. 절망적인 점수였다. 2학기에 80점을 맞아야 3학년에 진급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께서도 내 상황을 들으시고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외국인 학생에게 제 2외국어를 가르치면서 그런 문제를 내고, 일본인과 같은 시점에서 채점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교수님들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지만, 내 시험지를 채점하신 교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일본 유학생들에게 적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