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 면접시험
논술이 끝나고 한 달 후, 3월 중순에 면접이 있었다.
면접 날 아침에 늦잠을 자 버린 나는 급하게 일어나서 도쿄대로 향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문과 3류 1차 합격자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고, 내가 두 번째였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 나의 차례가 되었다. 면접 장에 들어갔다.
교수님이 다섯 분이나 앉아 계셨다.
한국에서 **교육대학교, **여자대학교, 그리고 일본에서 와세다대학교 이렇게 세 군데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었지만 교수님들이 다섯 분이나 앉아 계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이런 저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 3학년까지 다녔네요. **교육대학교면 졸업하면 바로 교사를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유학을 온 이유와,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학부에 다시 들어가기를 원하는 이유를 합쳐서 말해 주세요.” 역시 도쿄대 였다.
이전에, 도쿄대학 정도되면 이미 한국의 주요 정보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고등학교가 좋고, 어떤 대학교가 이름이 있는 곳들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ABK일본어학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일본은 한국과 제도가 달라서, 교육 대학교(사실 정확하게는 없을뿐더러)를 졸업한다고 해서 교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교사가 되는 것’이 한국처럼 인기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하면 바로 교사를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라고 질문을 한 것은 역시 정보를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면접을 보면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한꺼번에 ‘정리해서 말 하라’라는 주문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려서 잘 정리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됐다.
“저는 처음부터 교사가 되려는 생각으로 교육 대학교에 진학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학 연구를 하고 싶어서 간 것이었는데, 실제 교육 대학교는 교원양성을 위한 대학교여서, 연구자가 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알아 본 결과, 한국에서는 학부때부터 제가 하려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대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문적인 부분을 기초부터 다시 한 번 공부하고 싶어서 학부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어서, “그러면, ‘하고 싶은 연구’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그렇게 공부하려고 하는 점이 확실하게 잡혀 있는데, 우리 학교는 학부 1,2학년 때에는 ‘교양학부’라고 해서, 체육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등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나는, “그 점도 제가 도쿄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교육학이라고 하여서, 교육학만을 계속해서 연구한다면,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많은 분야들에 대한 지식과 공부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전공과 학교선택, 유학의 이유 등에 대한 질문이 끝나자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 나왔다.
“논술 두 문제 중에서 어떤 문제가 더 쓰기 쉬웠나요?”‘???’
이런 질문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논술에는 두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워낙 관심이 많은 분야였기 때문에 쉽게 써 내려갔지만, 두 번째 문제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솔직하게 두 번째 문제가 어려웠다고 이야기 하면, ‘관심이 없는 분야(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군.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 써 내려 간 게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군’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두 번째 문제가 쓰기 쉬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 거짓말인데다, ‘잘 써 진 게 이정도야?’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잠깐 생각을 한 후에,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첫 번째 문제는, 교육학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평소에 관심도 있는 분야여서 그것보다는 두 번째 문제가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교수님들이 끄떡끄떡 하면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더 어이없는(?) 질문을 받았다. “자신이 쓴 논술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세요.” ‘???????? 내가 쓴 논술에 대해서 이야기 하라고? 무슨 이야기?’ 이렇게 난감할 때가.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야?’ 이번에는 더더욱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미 솔직하게 대답하는 노선을 타기로 했기 때문에 솔직한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제가 일본어를 공부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자의 자잘한 실수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한자를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덧붙였다. “어려서부터 한자 공부나 서예 등을 했기 때문에, 한자를 보면 의미는 전부 알지만, 일본식 읽기 방법이나 정확하게 쓰는 것 까지는 아직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고 웃어주었다!
‘난감할 땐 웃는게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수님들도 끄떡 끄떡거리면서 동감하는 표정 이여서 한 숨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일본어로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 질문을 듣고 ‘아차!’싶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책 중에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라는 일본의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사람이 쓴 소설이 있다.
교대에 재학중이던 시절, 이 책이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면 항상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벌써 예약자가 몇 명이나 있었다.
항상 예약자가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는 책이 있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예약을 해 놓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서 읽은 책은, 정말 훌륭한 내용이었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 같은 책이었던 것이다.
그 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일본에 와서 과외를 하던 중에, 한국에서 교사를 하시다가 휴직계를 내고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남편과 가족들과 함께 와 계시던 선생님의 자녀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역시 그 집에도 그 책이 있었다.
‘오랜만이다’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쳐 보았다.
뜻밖에도 일본원서의 제목은 한국의 제목과는 많이 달랐다. 직역하면 ‘토끼의 눈’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책을 나중에 중고서점에서 발견해서 바로 샀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읽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워서 덮었다.
얼마 후에, ABK일본어학교에서 면접 연습을 하던 중에, 질문을 받았다.
“일본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나요?” “일본 책이요? 일본 사람이 쓴 책이라면, 저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토끼의 눈’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아, 그 소설 정말 좋죠. 일본어로 읽었나요?” “한국에 있을때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습니다. (웃으며)얼마 전에 일본어로도 읽고 싶어서 샀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는, “아, 그러면 혹시 진짜 대학 면접때 그런 질문이 나오면 그냥 일본어로 읽었다고 하세요.
내용은 알고 있으니까, 혹시 내용에 대해서 질문이 나와도 대답할 수 있으니까요. 그 편이 아마 좋을 거예요.” 라고 말씀하셨다.
와세다대학교 면접 때에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아서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여기서 그 질문을 받을 줄이야!
솔직하게 말하는 노선을 타기로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토끼의 눈’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일본어로?” “(아니! 거기까지 다시 확인해서 물어 볼 줄이야!) 네.” ‘하느님! 용서해 주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진작에 읽어 둘걸. 그러자 놀랍게도 교수님들의 반응이, 서로 이렇게 말을 주고 받는 것이었다.
“책도 읽을 정도니까 괜찮지 않겠어요?” “응, 괜찮을 거 같은데요.” 아! 그랬던 것이다.
교수님들이 오늘 면접을 통해서 나한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들어가자 마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일본어가 되는지’였던 것이다. 보통 도쿄대학에 오는 인문계 유학생들에 비해서 나의 일본어를 공부시간이 짧다는 것은 ABK일본어학교에서도 충분히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면접에서도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교수님들의 반응을 보고 나는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중에 금방 시간이 흘러갔다.
교수님들이 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다 됐네요. 자, 이제 끝낼까요?” 라고 이야기 했다. 이 교수님들은 시간만큼 질문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살짝 웃으면서 면접실을 나왔다.
조금 특이한 면접이었다. 하지만 면접도 그 나름대로 즐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